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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코의 식탁..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란?

뽕다르 2008. 7. 2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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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히 본 영화 '노리코의 식탁'... 영화를 통해 감독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을 우리 사회의 문제에도 비쳐 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Q「노리코의 식탁」도 그렇고 전작인「수상한 서커스」도 그렇고 가정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다만 기능하지 않는 가정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성적이 떨어지거나 부모에게서 야단 맞는 등의 하찮은 일들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부모가 부모의 흉내를 내고 자식이 자식의 흉내를 내는 즉 영화 속의 렌탈 가족 같은 관계다. 이렇게 흉내내고 위장하는 가족이 무너지면 대단히 위험한 일이 벌어진다.

Q 도대체 결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다.

누가 진심이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모르는 상황에서 끝난 것이다. 잘보면 마지막에 네 명이 모여있을 떄는 나레이션이 나오지 않는다. 나레이션이 나올 때는 그것에 따라 행동하므로 거짓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데 나레이션이 나오지 않을 때는 그 진심을 알 수 없게 되버린다. 마치 후반부에 유카와 노리코와 목욜을 하면서 노리코인지 미치코인지 헷갈린다는 말처럼 말이다.  유카가 맨 마지막에 자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행복해하는 이유도 잠잘 때는 연기를 안하기 때문이다. 잠자는 순간만은 가면을 벗고 그저 숨만 쉬기 때문에.
2006 PiFan「노리코의 식탁」소노 시온 감독과의 대화

연간 3만 명의 자살자를 양산하는 전쟁 없이 평화로운 나라, 일본에서 태어나서 타국의 테러현장 뉴스를 보며 ‘일본에서 태어나 다행이야’ ‘저기는 무서운 곳이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여기저기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지금 그 어떤 전쟁도, 테러도 3만 여명의 사망자를 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3만 명의 사망자를 낳고 있는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도 사실은 무서운 나라가 아닐까? 이런 나라에서 살면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닐까?
노리코의 식탁 紀子の食卓, 2005 (시네21, 영화 제작노트)

나는 ‘나’를 연기할 때만 비로소 ‘나’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건 소노 시온이 현대 가족제도에 던지는 지독한 농담이자 역설이다. 그는 ‘방 안의 코끼리’처럼 누구도 쉽게 지적하거나 거론하기 힘든 문제를 한 소녀의 성장통에 투영해 서술하고 있다.
현대 가족제도에 던지는 지독한 역설(FILM2.0 허지웅기자)

이 영화를 만든 소노시온 감독은 영화를 통해 현대사회의 가족이라는 것은 단지 각자의 역활놀이에 불과할뿐, 그것이 정말 자신의 본 모습인냐는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 합니다. 즉, 가족속에서의 '역활'에 의한 '나'가 아닌 '나'로서의 '나'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다라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나'의 의미를 찾는데 있어서 현대사회의 가족이라는 것의 모순을 이야기 하는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 특히 청소년 문제에 있어서 이런 자기 자신으로서의 '나'와 가족으로서의 '나'의 충돌이 가장큰 원인중 하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것과, 가족의 일원으로서 해야 하는것들 사이의 갈등이 여러 문제를 만들어 내죠.

가족이라는것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부정적이지는 않을것입니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자신의 역활을 생각할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본 모습이 외면 되는것이 아닌지, 혹은 서로의 본모습을 외면한체 가족으로서의 역활만 강조하는것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